3/21/2011

왜 에스겔 성전?

김상래 박사, 에스겔 40-48 성전 정체성 분석
“에스겔 40-48장에 등장하는 에스겔 성전은 당시 유대 포로 공동체들에게 '메시야의 날에 야훼에 의해 지상에 세워질 이상적인 성전'으로 이해됐을 것이다."

김상래 박사(Sheffield 대학교 박사, 삼육대 교수)는 9월 26일 한신대에서 개최된 ‘제65차 한국구약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에스겔 40-48장에 나타난 '새 성전'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의 발제를 통해 위와 같이 결론내렸다.-- 발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유대인 포로 공동체가 현재와 같은 마지막 편집 형태 그대로의 에스겔 40-48장을 읽었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에스겔 당대의 독자, 완성된 텍스트로서의 에스겔 40-48장을 고려하면서 본문의 이상에 나타난 새 성전의 정체성을 파악해보도록 한다.

우선 정체성 파악에 앞서 새 성전의 특징들을 살펴봐야 한다. 첫째, 성전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건축학적 정보가 주어져 있다(40:5-42:40). 그러나 건축물의 높이나 재료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둘째, 지으라는 명령은 없고 단지 선지자가 본 것을 이스라엘에게 선포해 알게 하라는 명령만 있다(40:4). 그리고 그 알리는 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죄를 깨닫는 것과 관련이 있다(43:11). 셋째, 성전의 기구와 규례에 있어서 이전의 것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들이 빠져있다. 넷째, 야훼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들어와 성전에 충만했다(43:4, 44:4). 다섯째, 이 성전으로부터 생명을 일으키고 치료하는 강수가 흘러나온다(47:1-12), 여섯째, 이 성전은 열두 지파 사이에 나눠지는 땅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48:1-35).

에스겔 성전은 유대 포로들에게 첫째, 그들이 돌아가 건축할 실제적인 '지상 성전', 둘째, 지상 성전이 파괴된 이후 변화된 성전 신학에 의한 '하늘 성전', 셋째, 종말론적 '이상 성전' 으로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각각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1. 역사상의 지상 성전

문자적-역사적 해석을 지향하는 학자들은 에스겔 성전이 구체적인 역사적 성전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성전 이상 자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이스라엘 땅 시온 산에 실제로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유대 포로들이 에스겔의 성전에 대한 이상을 솔로몬 성전을 복원하라는 것으로 이해했을 리 없다. 포로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제의 관건은 과연 그들에게 이 성전 이상이 실제로 건축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까 하는 것이다.

1-1. 지상 성전 논거들

첫째, 에스겔은 이상 중에 이스라엘 땅의 '지극히 높은 산 위'(40:2)에 내려졌는데, 이 산이 시온산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 뒤를 이어 에스겔이 성전 이상을 설명하는 내용들은 그 성전이 실제로 그 땅에 세워질 것을 의미한다.

둘째, 성전 건축과 봉사에 대한 매우 상세한 지시들은 이 에스겔 성전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건축될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 성전에는 '야훼의 영광이 돌아온다'. 선지자는 8-11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것을, 40-48장에서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다. 만일 야훼가 성전에 돌아온다면, 그 성전은 예루살렘에 건설될 실제적인 성전이어야 한다.

넷째, 새 성전에 대한 이상은 에스겔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알게하고 그 율례를 지켜 행하게 해야 했다(43:11). 이것은 적어도 귀환 포로들의 시대에 이 성전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을 기대하고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1-2. 지상 성전 논거들에 대한 반론들

첫째, 이상 중에 성전이 '이스라엘 땅'에 세워진다는 것이 꼭 귀환 포로들이 그 성전을 역사적으로 세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은 성전이 '어디에' 세워질 것을 말하고 있지 '언제' 세우질 것은 말하고 있지는 않다.

둘째, 성전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성소의 메노라,떡상,법궤 등 언급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셋째, 당대 유대 백성들에게 그것을 보여 알게 하고 그 율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는 것이 반드시 그들이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만들라'는 명령은 없다. 성전을 보여준 것은 그것을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게 하'(43:10)기 위한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유대 백성들로서는 47장이 묘사하고 있는 만물을 소성케하는 강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을 지을 방법이 없었다.

유대 포로 공동체가 에스겔의 이상을 실제적 성전 건축을 위한 일종의 청사진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매우 적어보인다.

2. 하늘 성전

쿰란 문헌, 헤칼로트 문헌 등 2차적인 유대-기독교 문헌들은 종종 에스겔 성전을 하늘 성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요한계시록 21-22장에 묘사된 하늘 성전도 에스겔 이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에스겔 성전 이상은 후기 하늘 성전 개념의 근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참으로 하늘성전을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돼지기도 한다.

2-1. 하늘 성전 논거들

첫째, 본 이상에는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이 없다. 그것은 에스겔 성전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 건설돼 하늘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건축을 하기에는 결여된 지시 사항들이 많기에 이 기사에 나타나 있는 여러 성전 건물과 관련된 사항들은 오히려 이 건물이 실제로 사람의 손으로 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들이 구체화돼 있지 않으며, '높이'에 대한 지시사항이 없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들의 현실적인 재정적 능력으로는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점들이 지적돼왔다.

셋째, 이 성전 이상은 에스겔이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서 결국 에스겔이 현재 실존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이 성전 이상은 34-37장의 회복에 대한 약속, 38-39장 곡에 대한 마곡의 종말론적인 전쟁 이후에 등장한다. 따라서 이 성전은 야훼에 의해 창조된 하늘 성전으로서 종말의 때에 지상에 옮겨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섯째, 본 이상에는 기구, 의식에 관한 규례들에 대한 언급이 매우 미비하다. 전에 있던 성전들과 너무나 다른다. 따라서 지상 성전이 결코 아니다. 또 에스겔서에는 지상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며 지상 성전을 비판하는 경향이 눈에 띤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새 성전은 하늘 성전이다.

여섯째, 성전이 출현할 때 그 둘레의 평야에는 높이 솟은 우주 산이 생겨나고 그 성전으로부터는 치료하는 강수가 흘러나오는 등 지상의 조건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즉 이 성전은 하늘 성전일 수 밖에 없다.

일곱째,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에 원형적 성소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의 모형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믿었는데, 에스겔이 바벨론에 있었기에 그는 이런 바벨론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2-2. 하늘 성전 논거들에 대한 반론들

첫째, 성전을 만들라는 명령은 없지만 그것이 꼭 새성전이 하늘 성전임을 뜻하는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에덴동산을 지상에 만드셨듯이 하나님이 지상에 성전을 세우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건축을 위한 전체 지시 사항이 결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건축 정보가 제공돼 있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할 것임을 나타낸다. 고대 문서들의 경우 건축물들을 위해서 종종 개략적인 정보만 제공하기도 했다.

셋째, 포로들 중 일부는 상당한 부를 지니고 있었기에 포로들이 성전을 지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는 판단도 옳지 않다.

넷째, 에스겔이 이상 중 그 성전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반드시 그 성전이 이미 세워져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자는 포로들로 하여금 그 성전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자기들의 시대에 이미 완성이나 된 것처럼 믿게 하라고 촉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결국 그 이상은 그 성전이 미래의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지상에 세워질 것임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섯째, 비록 이 성전이 종말론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때까지 하늘에 머물다가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 기사에서는 성전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개념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여섯째, 새 성전이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과 상이한 차이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차이점은 지상 성전들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에스겔 성전만의 독특한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난 것은 그 성전이 지상 성전이어서가 아니라 그 성전이 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일곱째, 치료하는 강물이 흘러나오는 기적적인 특징은 지상에 회복될 이상적인 성전의 특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성전의 특징이라기보다 이상적인 성전의 특징이다.

여덟째, 에스겔이 바벨론의 하늘 성전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상성전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상 성전의 함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늘 성전 교리가 포로기 때 시작됐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 포로들이 하늘 성전 개념을 가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에스겔 40-48장의 성전 이상을 보며 새성전이 하늘 성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을까는 생각해봐야 한다. 적어도 그 포로들이 이 성전이 자기들이 지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것이 꼭 에스겔 성전이 하늘에 있는 성전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 종말의 때에 지상에 세워질 이상적인 우주발생적 성전

에스겔 새 성전이 '역사적 지상 성전'이라는 입장, '하늘 성전'이라는 입장 둘 모두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그 성전은 '세상이 회복되는 종말의 때에 야훼에 의해 지상에 세워질 이상적인 성소'다.

이와 같이 새 성전의 정체성을 이렇게 이해하는 그룹은 본문에 나타난 지상 성전을 강조하는 요소들은 '실제로 땅에 세워질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 성전을 강조하는 요소들은 '하늘적'(이상적, 종말적, 신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근거들을 살펴보자.

첫째, 본문에는 성전이 하늘에 존재한다거나 하늘에 머물다가 내려온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둘째,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이 없는 것은 그것이 야훼에 의해 직접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전의 성전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많은 중요한 것들이 생략돼 있음은 이 성전이 그 기구 각각의 기능보다 야훼의 임재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이상적인 성전임을 나타낸다.

넷째, 이 성전으로부터 치료하는 강물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이 성전의 이상성을 가장 뚜렷하게 증거한다.

그런데 강에 대한 기사는 창세기 2장의 에덴 동산 기사를 반영한다. 창세기 2장은 동방에 있는 에덴동산으로부터 '강이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었고', 거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성전에서 나오는 강물은 에덴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회복할 것을 증거한다. 강으로 말미암은 변화는 '재창조'나 '새창조'라고 불릴 수 있다. 만일 에스겔 성전이 에던동산과 같은 성격의 것이라면 하늘 성전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이루어질 창조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히브리 성서에서 창조는 처음부터 야훼에 의해 땅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 본문에 성전 건축에 대한 명령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라고 이 그룹의 학자들은 이해한다.

당시 유대 포로들이 에스겔 성전을 위와 같이 이해했을 개연성은 앞의 두 해석의 경우보다 높아보인다.

4. 결론

유대 공동체의 에스겔 성전에 대한 이해를 정리해보면, 그것은 첫째, 사람의 손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실제 건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셋째, 그래도 물리적으로 이 땅에 세워질 어떤 것이다, 넷째, 그것이 세워질 때는 세상이 에덴 동산과 같이 변한다, 다섯째, 그러나 그것은 하늘에게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여섯째, 야훼께서 거기 임재하신다.

이것은 창조의 회복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포로들에게 그들의 포로된 상황을 반전시키는, 메시야의 시대에 야훼 하나님에 의해 지상에 건설될 이상적인 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개연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만일 이런 판단이 옳다면, 이런 이해가 쿰란 공동체들에 의해 '하늘 성전'으로 해석되었다가, 다시 신약의 기독교적 묵시문학에 의해 '하늘에 있다가 땅으로 옮겨지는 이상적인 성전'으로 발전했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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